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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bmaster | 2016.10.23 11:31 | 조회 3415


    남편 이야기 / 하나님이 좋아하는 마음을 넣어주셔서 좋아하며 산다
    박덕귀(기쁜소식전주교회)


    나는 1964년에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 팔선리 용전에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재혼하셔서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열아홉 살에 나를 낳으신 후 네 명의 동생들을 더 낳으셨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랑에 다니며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았고, 동진강에서는 물길을 따라 더듬어 물고기를 잡았다. 언덕에서는 개구리 뒷다리로 참게를 잡고, 해 지기 두세 시간 전에는 뱀을 잡았다. 잡은 것들을 내다 팔면 먹을 것을 살 수 있어서 무섭지만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흰 쌀밥을 먹고 싶으면 낫을 숫돌에 갈아 소 먹일 풀을 베어 골망태에 한가득 담아 친척집에 갖다 주면 되었다. 음식이 거의 없었기에 그저 밀가루만 있는 수제비도 자주 먹었다.

     전주로 이사와 30만원 전셋집에 살았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한방을 썼고 부모님과 네 명의 동생들이 다른 한방을 썼다.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늘 꼴찌였다. 수업료도 꼴찌로 냈고 공부도 꼴등이었다. 선생님들의 표적이 되어 거의 매일 맞았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맞을까봐 참았다. 아버지는 매를 대시면 서른 대를 때리셨다. 아버지는 큰아들인 나를 사랑하셨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은행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지만 꼴등이어서 안 되었다. 한 번도 아들 자랑을 하실 수 없었다. 고등학교는 전주농고 축산과를 다녔다. 시험 시간에 긴장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답이 ‘나가라 나가라 나가 나가 다나가 다나가 나가’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모두 나가라고 그런 답을 정해 놓았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학창 시절도 방황의 연속이었기에 인생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공부는 버리고 음악 하나만 하자!’ 아버지는 내가 음악을 하면 땅에 묻어버리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몰래 막일을 해서 번 돈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년 재수 끝에 전주 우석대학교 국악과에 원서를 냈다. 국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달이라서 냈고, 합격했다. 아버지는 내 삶이 엉망이라고 병무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아들을 인민군이 보이는 최전방으로 보내 죽든지 사람이 되어서 오든지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그때도 아버지 몰래 육군본부 군악대 시험을 쳤고, 지원자가 없어서 합격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안 했지만 나름대로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를 많이 했다. 피아노를 치며 나도 모르게 ‘고상병’에 걸려 ‘죽으면 죽었지 딴따라는 안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배고프고 어려워서 결정했다. ‘딴따라나 하자!’ 회갑 잔치나 여러 행사에 가서 반주해 주고 음악을 연주하면 공무원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그런데 돈이 생기니 걷잡을 수 없이 타락했다. 돈을 벌면 힘들게 살아온 우리 가정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전북 도립국악원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쳤는데, 국악원 원장님이 느닷없이 ‘라쿠카라차’라는 곡을 피아노로 쳐보라고 했다. 국악원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였다. 얼떨결에 쳤고, 합격했다.

     국악원에 들어가서도 방황은 계속되었다. 전주시 흑석골은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데, 지는 해를 보노라면 ‘나도 죽음 앞에서 저렇게 갈 텐데 여한이 없는 그런 진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악원 대금부의 조용석 씨가 나에게 와서 성경을 폈다. 나는 성경을 전혀 몰랐기에 성경을 덮고 진리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조용석 씨는 계속 성경 이야기를 했다. 결국 조용석 씨를 따라 여름 캠프에 갔고, 그곳에서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후 기쁜소식전주교회 예배에 참석해 앞으로 교회에 잘 나오겠다고 간증한 후 교회를 떠나 3년을 지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삶 속에 일하셨다. 원치 않았던 결혼을 했는데, 결혼 4개월 만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일로 나는 교회로 돌아왔고, 1997년에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 은혜를 입었다. 처음에는 집사람과 장모님, 아버지 모두 결혼을 반대했다. 집사람은 방탕한 내 모습 때문이었고, 장모님은 내가 재혼이라서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집사람에게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네 인생은 망해. 내 아들은 산속에 처박혀 혼자 살다가 죽어야 해!”라고 하셨다.

     결혼 후에 은근히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려고 하는 마음이 집사람을 힘들게 했다. 구역장, 장년회장을 맡으면서 집사람이 교회에 안 간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악착같이 끌고 다녔다. 그렇게 3년쯤 지났을 때 집사람이 아예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뻗어버렸다. 큰일이었다. ‘장년회장의 아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발견되었고, 내가 집사람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기도한 후에 아내가 교회에 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안 간다고 했다. 기도는 날아가버리고 화가 너무 나서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나님께 화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의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는 말씀이 임하면서 힘이 빠졌다. 하나님이 이끄셔야 함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집사람과 함께 공연을 하는데, 처음부터 편안하게 같이 하지는 못했다. 나는 북도 잘 못 치는 사람이지만 집사람은 명창이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데다가 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 등을 받은 도립창극단의 수석 단원이다. 북을 잘 못 치는 고수와 함께 공연하는 명창은 거의 없다. 반주가 엉성한 사람과 누가 노래하겠는가?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가기 싫어하는 집사람의 마음을 내가 바꿀 수 없어서 기도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집사람에게 일해 주셨다. 집사람이 공연하러 안 간다고 하면 나도 손을 놓았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할 수 없기에 붙잡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항상 이끄셨다.

     요즈음은 집사람이 예전의 집사람이 아니다. 가정적으로 보면 나는 빵점보다 못한 사람이다. 집에 없어도 무관한 사람이다. 교회에서 신앙을 배우면서 내가 가정을 돌보는 것보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이 우리 가정을 돌보시게 했다. 지금 사는 집도 내가 준비한 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집에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겼는데, 20년 가까이 장모님 집에서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다. 장모님이 아직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으셨지만 복음의 일에 동참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장모님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집사람과 나는 성격부터 모든 부분에서 달랐다. 자라온 환경도 너무 다르고, 집사람은 나보다 편하게 자랐기 때문에 의견이 충돌할 때가 많았다. 자녀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나에게 맡기는 일로 가장 크게 싸웠다. 집사람에게 3년 가까이 이야기한 것 같다. 가정의 질서가 깨지면 아이들의 욕구를 집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집사람이 마음을 바꾸고 나를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때 감사했다. 나는 모든 부분에 일방적일 때가 많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저지르며 사는 성격인데, 집사람은 안정적이다. 나는 어느 면으로 봐도 좋은 구석이 없다. 우리 가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든다. 장모님은 우리를 위해 헌신하며 살고 계시고, 집사람 또한 육신적으로 즐거울 게 없는데 사람들로부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복음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 공연할 수 있도록 길을 여시는 하나님! 우리 모습과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감사하다.

     우리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마음을 넣어주셔서 서로 좋아하며 산다. 나는 가정을 어지럽히는 일만 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셨다. 집사람과 함께 교회 안에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내 인생은 교회를 나가면 그냥 타락이다.


    아내 이야기 /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며 사는 우리 부부
    최애란(기쁜소식전주교회)


    교회를 10년 정도 다니던 나는 내가 세상 누구보다 착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바쁘게 지내느라 교회도 잊고 살았지만 한 번씩 교회들을 보면 타락한 모습에 회의가 느껴졌다. 국악원에 입사해 입사 동기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기쁜소식선교회를 알게 되었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생각이 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구원받은 후 교회를 떠나 사기 결혼에 휩쓸려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이 자살하는 일을 겪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교회로 돌아온 남편의 상태였다. 그런 남편이 내게 결혼하자고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에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결혼이었기에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과 가족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교회 안에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결혼식을 올렸다. 돌아보면 국악계의 많은 선생님들과 직장 동료들, 친구들을 그 좁은 골목 안에 있었던 전주평강교회(현 기쁜소식전주교회)로 초청해 결혼식을 올린 것은 절대 내 마음이 아니었다.

     결혼한 후 남편은 교회밖에 몰랐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교회였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고, 나와 상의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헌금했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교회에 드리는 남편을 보니 내가 임신을 해도 이사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서운했다. 결혼 생활에 대한 꿈이 한 달 만에 깨졌다. 사람들의 눈총을 이기고 한 결혼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말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혼하자는 말도 자주 했다. 몸이 아픈데 남편은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도 나 혼자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편의 행동에 변화가 없고 반응이 없자 포기하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며 살았다. 남편이 나보다 하나님과 더 가깝고 믿음과 신앙심이 있으니 나도 남편의 마음과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무섭다 보니 절제하고 순종하며 살았지만 아빠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마음의 이야기를 계속 해주면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해서 그 마음을 단속해 주고 다스려 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아들과 딸이 맑고 밝게 자라고 있다.

     남편의 집요함 때문인지 아니면 진한 관심과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끄심 때문인지 나도 교회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마음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남편이 이끌어 주어서 복음의 일을 함께하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을 써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고, 내 삶이 발전하고 복을 받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전북 도민을 위해 크고 작은 행사에서 국악 공연을 개최하는 단체에서 일하는데, 365일 거의 붙어 다닌다. 각자의 부서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기도 하고 무용, 악기, 판소리 등이 어우러진 규모가 큰 창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또 직장에서 하는 공연 외에 개인적인 요청을 받기도 하고 전국 교회의 집회나 행사에 가서 공연하기도 한다.


     

    어느 공연이나 어려움은 있다. 목이 쉬어 노래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아이들이 아플 때도 있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공연을 하지 못한 적이 없다. 공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맛보았다. 때때로 남편과 생각이 달라서 다투다가도 공연을 하려면 화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서 바로 마음을 꺾는다. 그렇게 공연하다 보면 언제 다투었냐는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공연으로 힘들고 지칠 때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고맙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한 나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를 이끌어 주고 기다려 주었다. 남편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일하시는 모습이 보일 때는 따르고 싶고 존경스럽다.

     많은 돈을 벌지 않는데도 말씀을 들으면 행복하고 기쁘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그라시아스 음악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링컨하우스 광주스쿨에 다니는데, 교회가 아이들의 마음을 자라게 해주고 말씀 안에서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 처음에는 남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내게 다 설명해 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요즘은 우리 부부가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며 살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순간순간 형편에 매여 두려움에 빠질 때도 있지만 말씀이 이기게 해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계셔서 감사하다. 사탄이 자주 찾아오지만 말씀으로 반격하고 공격하며 산다.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나를 온전케 해 놓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함께 복음을 위해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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